0728(화) 책방에 가다

오늘 소개해주실 책은? 

제가 최근에 전주 중노송동에 기자촌을 차로 지나갈 일이 있었는데, 운전을 하고 있던 친구가 “저 간판 봐, 너무 괜찮다”고 하는 거예요. 

보니까, 생긴지 한 3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허름한 미용실 간판이이에요. 색깔도 그렇고, 무늬도 그렇고, 수십 년 전인데도 요즘 시대 것이 아니라서 더 세련되어 보였어요. 전주 기자촌이 지금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가게가 다 비워지고, 골목에 사람도 없고, 한산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저 미용실 간판이 곧 떼어질 텐데, 

주인이든 누구든 잘 보관해둬야 할 텐데, 누군가 저 미용실 주인한테 물어서 그 이야기를 기록해줘야 할텐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선미촌에서 서점을 하고 있어서 더 그런지 몰라도 곧 철거를 앞두고 있는 곳, 조만간 사라져버릴 풍경들을 보면 더 안타깝고 쓸쓸한 기분이 들더라구요. 

그런 마음으로 고른 책 한권을 오늘 소개하겠습니다. 바로 <을지로 수집>이라는 책입니다.

 

<을지로 수집>이요, 서울에 있는 을지로에 관한 책인가 봐요.

그 을지로 맞습니니다. 종로, 청계천로와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상업지구죠. 그런데 을지로 하면, 어떤 풍경이 떠오르시나요? 

역시 철공소, 인쇄소, 이런 풍경들이 생각나는데요. 도심 공업지대라 할 정도로 수많은 철공소와 인쇄소, 밥집과 술집들이 낡은 건물들과 그사이의 골목길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곳이죠. 그러던 이 일대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의 관심을 끌게 됐어요. ‘힙하다’고 해서 ‘힙지로’라는 별명이 생겼고, 새롭고 이질적인 것들이 오래된 풍경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현상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 됐죠. 그런 을지로를 한 작가가 관찰하면서 그리고 쓴 책이 <을지로 수집>입니다.

 

작가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렸나 봐요. 어떤 분인가요?

펜 드로잉과 사진을 통해 도시의 다양한 모습들을 기록하고 수집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설동주 작가입니다. 

그는 몇 년 째 ‘시티트래킹’이라는 이름으로 그림과 기록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호주를 시작으로 도쿄, 뉴욕, 서울 등 다양한 도시의 모습을 펜과 사진으로 담는 일인데요. 서울에서는 특히 을지로의 남다른 분위기에 사로잡혔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을지로 재개발 소식을 들었고, 철거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는데요. 

그날로 필름 카메라를 들고 을지로 가는 버스를 타 그곳을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특유의 펜드로잉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었던 설동주 작가는 이 책에서 직접 그린 그림과 직접 찍은 사진을 통해 을지로의 사람, 풍경, 공간, 물건, 이야기들을 수집합니다. 

 

어떤 가게들을 주로 다루고 있나요?

언제부터 있었는지 토박이도 모른다는 이발소, 빈티지 명품과 이름 없는 브랜드를 조화롭게 섞어 놓은 편집숍, 필름을 들고 오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현상소 겸 사진관, 독립출판물을 다채롭게 갖춰놓은 서점, ‘다품종 소량생산’을 추구하는 인쇄소, 4대째 주인이 운영하고 있는 카페 겸 바, 비주얼 스토리텔러와 디자이너의 스튜디오까지. 

1층에는 공업사, 2층에 카페가 있는 을지로처럼 오래된 곳과 새로운 곳이 하나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작가는 을지로를 “서울인데 서울 같지 않은 섬 같은 곳”이라 정의합니다. 오래된 것과 새 것이 묘하게 공존하는 ‘오래된 미래’ 같은 그런 느낌이죠.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면?

1959년부터 을지로를 지켰던 ‘이화다방’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을 개조하고 계승해서 카페 겸 바로 만든 분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을지로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데코타일 바닥과 오래된 나무벽 등이 살아 있어 ‘원조 을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는데요. 

임대료가 저렴해서 을지로에 가게를 알아보던 한 젊은 부부가 이곳을 발견하고 매일 이곳에 와서 5000원짜리 콜라를 마셨다는 이야기, 

그러다 주인이랑 친해져서 가게를 몇 번 보고, 손님들과 얘기하고...그러다 ‘사장님, 혹시 가게 파실 생각 없으세요?’ 물어봤는데, 

사장님이 당혹스럽게도 ‘그 얘기 언제 하나 기다렸어요’ 이러셨대요. 

자초지종을 들어보니까 이렇게 찾아온 사람이 여럿이었는데 권리금이 너무 세서 다 발길을 돌렸었대요. 

사실 이 부부도 그날은 그냥 발길을 돌려야했대요. 권리금을 아직도 너무 세게 부르니까. 그래서 서너달을 음료수 들고 찾아갔대요. 

그래서 결국 좀 깎아서 들어오게 됐나봐요. 계약서 작성까지 다 마치고 열쇠를 건네 받던 날에 사장님은 잔 하나 각설탕 하나 안 가져가고 그대로 남겨뒀대요.  

딱 하나 가져간게 밥솥이래요. 그러고는 소주 한병 사와보라고 하시더니, 그걸 맥주잔에 가득 따라서 두 번 나눠 드셨대요. 

그리곤 ‘젊은 사람 열심히 해봐요, 나중에 놀러올게요’하고는 떠나셨대요. 20년 지낸 가게를 떠나는 마지막 모습이었다는 이야기가 영화 같았습니다.

 

이 책을 다 읽으면 어떤 마음이 드는지?

빨리 제가 있는 곳에서 양질의 기록을 만들어야겠다는, 그래서 책을 만들어야겠다 이런 목표가 생겼고, 여기 인터뷰에 나온 을지로 가게에 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특히 이 작가분이 사진도 되고, 그림도 되고, 글도 되니까 그야말로 천하무적처럼 이 공간을 기록해내는 점이 선물세트처럼 좋았고, 보는 재미도 있고 읽는 재미도 컸습니다.

 

혹시 아쉬운 점과 좋았던 점은?

지금 을지로에 가면 가장 장사가 잘 되는 오래된 호프집이 있는데, 그 사장님 인터뷰는 없더라고요. 

그게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고(웃음), 또 을지로 하면 인쇄소나 철공소가 또 대표적인데, 그 주인분들보다는 최근 생겨난 젊은가게 주인분 이야기가 더 많아서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 주인장들이 마치 기록자나 스토리텔러처럼 옛 이야기를 술술 잘 알고 있어서 마치 세대간의 융합이 된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 들더라구요. 작가가 선별한 특색있는 맛집 리스트, 을지로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다양한 공간들이 부록처럼 뒤에 있어 가이드처럼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