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정하는 법이 바뀌면, 지방정부 역시 만들거나 고쳐야 하는 하위법령인, 일명 '필수조례'라는 게 있습니다.
저희가 전북특별자치도 출범 원년이자 민선8기 후반기를 맞아, 이 필수조례가 제대로 정비됐는지 점검해 봤는데요.
전국 244개 광역·기초지자체 가운데 전북자치도가 최하위권이 머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박혜진, 조수영 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2017년 정부는 지하수 보전구역 관련법에 따른 필수 조례 제정을 지자체에 권고했습니다.
수자원 고갈과 수질오염을 예방하기 위한 법으로, 농업용수 사용과 개발이 제한될 수밖에 없어 주민의견 청취의 필요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민과의 갈등이 없도록 지자체가 구체적인 의견 청취 방법을 조례로 상세히 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필수조례 제정 지역 관계자 / 전화]
"언제든지 (지하수보전구역) 지정 요청도 있을 수 있고 지정을 해야 될 수도 있거든요. 가장 주민한테 피해가 덜하고 가장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이에 제주와 세종, 충남 등은 구역 지정 및 변경에 대한 공람 기간과 장소, 의견 제출 방법 등을 조례에 명시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하지만 법 개정 7년이 지나도록 전북도는 관련 조례를 제정하지 않았습니다.
[유승민 / 전북자치도 물통합관리과장]
"현재까지 지정할 필요성이 있는 곳이 이렇게 없었다고 설명 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 필요성이 제기가 된다면 저희가 관련 지정을 하는 것도 검토하도록.."
법이 제정 또는 개정되면 반드시 만들거나 고쳐야 하는 이런 필수 조례가 적지 않지만, 법 체계 상 미흡한 구석이 속속 눈에 띕니다.
무형문화재의 인증 없이 명칭을 무단으로 사용하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무형유산법,
조례 정비를 통해 구체적인 과태료를 정하도록 하고 있는데 역시 7년 넘게 조례화되지 않았습니다.
경상남도는 법을 위반할 경우 최대 7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조례를 만들어 전북과 대조적입니다.
[경상남도 관계자 / 전화]
"저희가 조례를 만들면서 그 부분들을 챙겨 넣어서, 과태료는 다 세수입 처리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확인 결과 일부 필수 조례는 상위법이 제정 또는 개정되고도 10년 넘게 제정되지 않아 공백이 적지 않았습니다.
[박혜진 기자]
"올 초 전북특별자치도로 출범하면서 자치권 확대에 열을 올렸던 것과 달리, 기존 법령체계의 빈틈은 그대로 방치한 건데요.
전체적인 필수조례 정비 실태를 이어서 조수영기자가 전합니다."
[조수영 기자]
법제처가 운영하는 국가법령정보센터입니다.
개정되거나 신설된 법에 따라, 지자체별로 반드시 고치거나 만들어야 하는 조례를 별도로 정리해놨습니다.
[유태동 / 법제처 자치법규 입안지원과장]
"상위법령의 위임사항을 조례에 반드시 규정할 의무가 있는 조례입니다. 행정안전부 주관의 지방자치단체 합동평가 지표 중 하나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전체 760여 개 법령의 입법취지에 맞게 후속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정한 '필수 조례'는 6만 2천여 개,
이에 따라 전국적으로 정비를 완료한 조례가 83%를 넘어섰습니다.
[조수영 기자]
"그런데 전북자치도의 필수 조례 정비율은 75%로 전국 평균에 미달하고 있습니다."
전국 244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밑에서 다섯 번째, 17개 광역지자체 중 가까스로 꼴찌를 면했습니다.
비단 최근의 현상만은 아닙니다.
민간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전북자치도는 재작년에도, 그 전년도에도 필수조례 정비율이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최하위권이었습니다.
매년 정부가 전국 지자체 업무 평가에서 척도로 활용하지만, 단순히 순위가 낮은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김민수 /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
"법률 개정으로써 일어나는 효과들, 이런 것들을 자치단체 주민들이 직접적으로 체감하기 어려워진다는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전북자치도는 뒤늦게, 길게는 10년 넘게 입법공백 상태로 방치된 80여 건의 필수조례들의 입법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박순임 / 전북자치도 법무행정과장]
"왜 안 됐는지, 언제 할 것인지 하는 부분들은 항상 같이 피드백을 해서 조속히 도민들에게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안 돼 있는 것들은 할 수 있도록.."
다만 필수조례가 지방정부 고유의 자치권과 충돌하고 지역실정에 비춰 정말 필수인지 의문인 것들도 상당하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편적인 권리·의무를 규정하는 법에 따라 정비를 의무화 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지자체 사정과 입맛에 좌우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MBC뉴스 조수영입니다.
영상취재 : 김종민, 유철주
그래픽 : 문현철, 안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