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조성만기념사업회 제공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신부가 36년 전 독재정권에 항거하다 열사가 된 제자의 유서를 한 자, 한 자씩 새긴 서각을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 앞에서 선보였습니다.
오늘(27일) 오후 3시 전북 군산시 하제마을 팽나무 아래에서 열린 제41회 팽팽문화제는 '통일열사 조성만 요셉 유서 서각 순례 전시'와 함께 진행됐습니다.
김제 용지면 출신으로 서울대 화학과 학생이었던 조성만 열사는 1988년 5월 15일, 24살의 나이에 서울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에서 '양심수 전원 석방과 군사정권 반대' 등을 외치며 할복 투신했습니다.
며칠 후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조성만 열사 노제에는 30만 명 가까운 인파가 몰렸고,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와 김대중 당시 고문도 나란히 영정 앞에 고개를 숙이기도 했습니다.
문정현 신부는 천주교 신자인 조성만 열사에게 세례를 해준 영세 신부입니다.
문 신부는 조 열사를 '신앙의 스승'이라고 부르며 마음에 담아왔고, 84살의 나이에 지난 3개월 간 1,800여 자의 유서를 망치로 칼을 때려 목판에 아로새겼습니다.
모두 9장에 달하는 서각은 세로 40에서 50cm에, 가로 길이는 1m에 달합니다.
'척박한 땅, 한반도에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고자 했던 한 인간이 조국통일을 염원하며 이 글을 드립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조 열사의 유서에는 5.16 쿠데타를 지원하고 1980년 '광주학살'을 방관한 미국을 비판하고, 군사정부의 퇴진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또 1988년 올림픽을 남북이 공동 개최해 이산가족 등 구성원들이 고통받는 분단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고도 쓰여있습니다.
전시가 열리는 하제마을 팽나무도 사연이 깊습니다.
2000년대 초중반 새만금방조제의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면서 하제마을 주민들이 생업을 잃었고, 북쪽 군산 미 공군기지의 탄약고가 확장되면서 마을 땅이 국방부에 수용됐습니다.
600여 가구가 살던 마을에 남은건 단 2가구였지만, 600년된 팽나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생태 활동가들과 미군기지의 일방적인 마을 수용 방식에 문제제기를 하는 평화 활동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군산시는 하제 팽나무를 문화재청에 천연기념물로 추천해 보호에 나섰고, 매달 다른 주제로 인근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팽팽 문화제'를 열며 모여들고 있습니다.
이번 41회 문화제는 전시회와 함께 두릅과 쑥, 거죽나물 등 향긋한 봄나물을 뜯어 참여자들과 전을 부쳐 나눠 먹는 행사도 함께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