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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의기투합 협약식에서 웬 '밥그릇 싸움'?
2024-03-02 2127
박혜진기자
  hjpark@jmbc.co.kr

[전주MBC 자료사진]

"밥그릇 싸움이 일어나지 않게, 지사님이 조정을 해주셔야 합니다."


다름 아닌 지난달 26일, 전북자치도청에서 열린 '바이오특화단지 의기투합 협약식'에서 터져나온 이학수 정읍시장의 발언입니다.


정부의 특화단지 공모를 며칠 앞두고, 도와 전주시, 정읍시, 익산시가 힘과 뜻을 모으자며 함께한 자리였는데 그동안 누적된 감정이 터져 나왔다는 게 정읍시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불만이 본격화된 건 지난 2020년부터입니다.


전라북도와 익산시가 협력해 농식품부의 공모에 참여하면서 '동물용의약품 효능·안전성평가센터'를 유치한 것이 계기,


익산에 동물헬스케어 클러스터 구축사업까지 추진되면서 1천2백억 원이 넘는 지원을 받게 되자 정읍의 불만은 커졌습니다.


정읍시가 이미 지난 20년간 확보한 관련 인프라를 기반으로 '동물의약품 육성 전략'을 추진하고 있던 터였기 때문입니다.


■상반된 정읍과 익산의 입장


정읍에는 지난 2005년부터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안전성평가연구소, 농축산용미생물산업육성지원센터,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 등 연구·실증 시설들을 잇따라 확보됐고 이를 기반으로 첨단과학산업단지가 조성된 바 있습니다.


농생명산업의 메카라는 이름이 붙은지 오래인데 같은 산업의 중심이 전북 내에 또 태동한 것,


도가 정읍이 아닌 익산에 힘을 실어주면서 정부로부터의 지원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게 정읍의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전북자치도와 익산은 전북대학교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와 수의과대학이 익산에 소재하는 등 동물의약품 연구와 관련성이 높은 기반 시설이 이미 갖춰져 있어 손을 잡았다는 설명.


도는 관련 기반시설로 300억 이상 드는 동물용의약품 시제품 생산시설을 여러 지역에 중복 투자하기도 어렵다는 해명도 덧붙였습니다.


펫푸드 산업 역시도 두 지역의 감정의 골을 깊어지게 한 원인입니다.


■펫푸드까지 익산이 독차지하나?


이런 사태를 겪은 이후 정읍이 눈을 돌려 손을 뻗은 곳은 '펫푸드 산업'.


그러나 애초 '동물의약품 클러스터'를 구축한다던 사업이 '동물헬스케어 클러스터 구축사업'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또다시 정읍의 심기가 불편해진 겁니다.


명칭이 변경됨에 따라 사업의 범주도 대폭 확대돼 '밥그릇 싸움'이 염려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 익산에는 의약품 뿐만 아니라 펫푸드, 의료기기, 의료용품, 의료관광까지 사업 목록이 추가됐습니다.


이 때문에 정읍이 업무협약식에서 관련 사업과 연구개발이 모두 특정 지역에 쏠리지 않도록 '익산과 정읍에 사업을 나눠 선택과 집중을 해야한다'는 의견을 김관영 지사에게 건의한 겁니다.


반면 같은 날, 정헌율 익산시장은 '익산이 식품과 동물의약품 분야, 2개 분야에 특화돼 있어 관련 생태계가 많이 조성되고 있다'고 언급하며 계속 추진해나갈 뜻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동물헬스케어 클러스터 사업에 대해 국내 최대 바이오 메카를 꿈꾸는 정읍시와 익산시가 각각 상반된 입장을 보이는 겁니다.


■타 지역과 쟁탈전 아닌 내부 쟁탈전?


지난해 여러 분야 국책사업의 대상지가 선정된 것과 달리 올해는 정부의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공모가 바이오 분야 1개 뿐이어서 경쟁이 유독 치열합니다.


경남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가 바이오에 지원하면서 쟁탈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이 소재한 인천, 식약처와 질병청이 들어선 충북 등 이미 기반을 갖춘 강력한 후보들이 뛰어든 것이 사실입니다.


반면, 전북은 정읍과 익산에 연구기반은 있지만, 바이오 기업 유치가 아직은 많지 않아 어려운 싸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북은 지난해 이차전지 특화단지 공모에서 관련 산업이 성숙 단계인 포항과 울산 등 쟁쟁한 지역들 옆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바 있습니다.


공모 당시만 해도 관련 선도 기업 하나 없는 이차전지 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는데도 지정을 받은 겁니다.


도는 선정 당시 유관기관 등이 협력체로서 대규모 투자 유치 등에 힘을 모았기 때문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힌 바 있습니다.


특화단지 지정이 시작되기도 전에 내부 쟁탈전으로 삐거덕대는 전북 바이오 벨트,


정부가 지난달(2월) 29일 신청서 접수를 마무리한 가운데 지역의 미래먹거리가 될 바이오특화단지 지정 역시 얼마나 힘을 모으고 머리를 맞대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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