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MBC 자료사진]
◀앵커▶
올해는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최근 전주 황방산에서 희생자들의 유골이 추가로 확인되면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참상이 드러나고 있는데요.
유전자 감식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혈육의 흔적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던 유족들이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허현호 기자입니다.
◀리포트▶
억울한 죽음 뒤 70여 년간 황방산 자락에 묻혀 잊혀졌던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
2019년부터 2년 동안 78구의 유해가 수습돼 안치됐고, 최근 100여 구가 추가 발견됐습니다.
뒤늦게나마 일부 뼛조각이라도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120여 명의 유족들, 하지만 발견된 유해가 그리던 가족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유전자 감식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종희 / 전주 황방산 희생자 유족]
"어느 곳에서 돌아가셨는지, 어느 골짜기 가서 흙 한 줌 떠다가 장사 모시고, 지금까지 장사를 못 해드렸잖아요. 어머니만 돌아가시고.. 지금이라도 해서, 만약에 우리 아버지 뼈 한 조각이라고 있다고 보면은 어머니 옆에다 모시고..."
특히 황방산 학살 사건의 경우 유품 등을 토대로 재판조차 받지 못한 미결수 상태로 학살 당했을 것이라 짐작될 뿐,
재소자 명부 등 사료가 부족하다 보니 명확한 진상 규명을 위해서도 유전자 감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박선주 / 충북대 명예교수]
"제일 먼저 돌아가신 분이 어떤 분이냐, 확인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거든요. 풍문을 통해서 수십 년간 (희생자들이) 어디 가서 돌아가셨다고 이야기를 듣고 있어요. (유전자) 매칭이 되면 그 이야기가 사실인 거죠."
세종 추모의 집에 안치된 전국의 학살 피해자 유해는 현재까지 3천7백여 구,
진실화해위원회가 내년도 예산안에 유전자 감식을 위한 예산 22억 원을 반영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내년 5월이면 활동이 종료된다는 이유로 3분의 1 수준인 7억 8천만 원으로 깎였습니다.
감식할 수 있는 유해는 고작 200구 남짓, 한정된 예산 속에 전북 지역은 우선순위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 관계자]
"이 예산으로 다 못하는 건 뻔하니까,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게 시료를 미리 채취해 놓는 것을 별도로 하고 있거든요."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가 국가 배상에 대한 부담 때문 아니냐는 비판도 나옵니다.
유해 발굴도 진척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전쟁 당시 동굴 입구에 사흘 밤낮 연기를 피워 넣는 군경의 일명 '오소리 작전'에 피난민들이 희생된 임실의 한 폐금광,
동굴 반대편에 200여 구가 묻혀있다는 복수의 증언이 나왔지만 발굴은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순창과 완주 등 잠재적 발굴 가능지로 분류된 곳은 도내 8곳에 이르지만, 전주 황방산 외에는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습니다.
[최정근 / 한국전쟁전북연합유족회 사무국장]
"시신이 발견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지금 제사를 지내고 있잖아요. 집에서.. 내가 일흔일곱인데 막내 정도 되고, 지금 자꾸 날마다 돌아가시기 때문에.."
내년 5월이면 한시적 기구인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기한이 종료될 상황,
남은 유족들은 그리움을 가슴에만 묻은 채 머리만 하얗게 세어 가고 있습니다.
MBC뉴스 허현호입니다.
영상취재: 김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