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새벽이생추어리
여기 ‘고기가 되지 않은’ 돼지가 있습니다. 3년 전 한 양돈장에서 구조된 돼지. 통상적으로 허용된 수명을 훌쩍 넘긴 30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3살 돼지, ‘새벽이’입니다.
(사진 제공 : 새벽이생추어리)
식탁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실제 모습은 보기 쉽지 않은 동물, 돼지. 우리는 돼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국내 1호 생추어리(구조동물에게 평생 돌봄을 제공하는 안식처)인 ‘새벽이생추어리’를 통해 우리가 몰랐던 돼지의 삶을 들여다봤습니다.
일반 돼지의 두 배는 훌쩍 넘는 압도적인 크기. 처음 마주한 돼지는 거대했습니다. 우리가 평소 이처럼 거대한 돼지를 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만 3살이 넘은 새벽이와 달리 대부분의 돼지는 자본 회전율이 가장 높은 생후 6개월, 인간으로 치면 고작 9살 정도에 도살되기 때문입니다.
크기의 놀라움을 뒤로 하자 호기심 많은 생명체가 눈에 들어옵니다. 자신의 구역을 찾은 기자가 궁금한지 가까이 다가와 냄새를 맡으며 상대를 탐구하는 듯합니다.
한낮에는 자신이 짚으로 만든 침대에 누워 낮잠을 자고, 체온 조절이 필요할 때는 몸에 진흙을 묻혀 목욕을 하고,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볼일’은 자신이 정한 공간에서만 보는 새벽이.
날이 포근해지자 코로 땅을 파며 땅속에 먹이를 찾거나 흙냄새를 맡는 행위, ‘루팅’을 하며 기분이 좋은 듯 폴짝폴짝 뛰어다니기도 합니다.
“돼지도 개나 고양이처럼 꼬리로 감정을 표현해요. 새벽이는 꼬리가 짧고 뭉뚝해서 표가 덜 나지만, 기분 좋을 때는 꼬리가 빠른 속도로 팽글팽글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축산업 돼지들은 관행상 꼬리가 잘립니다. 좁은 우리에 갇힌 돼지들이 높은 스트레스로 서로 꼬리를 물어뜯고 이에 염증이 발생하자 가장 값싼 해결책으로 자리 잡은 것.
비록 잘린 꼬리여도, 새벽이는 좋고 싫음 등 여러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뭉뚝한 꼬리를 열심히 돌립니다.
어둡고 좁은 축사가 아닌 자연광의 흙 위에서 자신의 습성을 누리며 사는 새벽이를 관찰하다 보면, 우리가 잊고 있던 당연한 것, 돼지도 느끼고 자각하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호기심으로 만난 새벽이, 삶의 목표까지 바꿔]
3개월째 생추어리에서 돌봄 활동을 하고 있는 강동균 씨는 이곳을 찾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동안은 돼지라는 동물을 ‘고기’라는 형태로만 만나왔는데 문득 궁금해졌어요. 살아있는 형태의 돼지를 만나고 싶다는 점이 컸던 것 같아요.
저는 고양이를 키우는데, 우리 집 고양이처럼 돼지도 사람을 알아보고, 시간이 지나면 다정해지는지도 궁금했습니다.”
평소 마련해주던 식단의 메뉴가 바뀌면 식사를 멈추고 울며 짜증을 내는 등 새벽이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다시 깨어난 듯하다’는 강 씨.
그는 “돼지에 관한 정보 지식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느낀다”며 ‘우리 주변의 동물에 무관심한 현 사회’에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돌봄 활동가가 ‘새벽이’에게 물을 주고 있다.)
[우리에게도 ‘아는 돼지’가 생기길 바라]
동물에게 감정이 있는 것은 당연한데, “돼지 같은 특정 동물과 단절된 사회에 살다 보니 현대인들이 너무 무감각해지는 것이 문제”라고, 새벽이생추어리의 활동가는 말합니다.
(새 지푸라기로 갈아주자 만족스러운 듯 휴식을 즐기는 새벽이/사진제공 : 새벽이생추어리)
이어 ‘고기를 먹지 마세요. 돼지도 생명입니다’ 같은 다소 거부감이 들 수 있는 주장을 하기보다 돌봄 돼지의 고유한 삶을 공유하면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연결감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아는 누군가’가 생기면, 그 대상은 더욱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는 것. 실제 새벽이 생추어리의 한 후원자는 지인이 ‘왜 돼지의 동물권을 중시하냐’ 묻자 “내가 ‘아는 돼지’가 있어 그렇다”라는 답을 남겼습니다.
차근차근 꾸준히, 새벽이가 더 많은 이들의 ‘아는 돼지’가 되길 새벽이생추어리는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