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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평안한 마지막을 위해 가는 곳” 호스피스 완화의료로 살펴본 ‘삶과 죽음의 의미’
2022-12-29 2031
목서윤기자
  moksylena@gmail.com

말기 암 환자 등 생애 말기 환자의 존엄한 죽음을 존중하고 돕자는 취지로 운영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잘 사는 것만큼, 생을 잘 마무리하는 ‘웰 다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호스피스 이용 수요도 늘고 있지만, 입원형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제공하는 도내 병원은 7곳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그중 공식 호스피스 전문병원으로 지정돼 올해 첫 돌을 맞은 전주 예수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를 찾아 완화의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예외 없이 찾아올 죽음이라지만, 평안한 ‘마지막 일상’을 위한 공간


종합병원 내 위치한 호스피스 병동은 담당 의료진과 보호자에게만 출입이 허용된 곳이었습니다. 


“어서오세요. 주말에만 세 분이 돌아가시고 오늘도 한 분이 가셔서 병동이 좀 비어 있는 상태네요”라는 인사와 함께 처음 마주한 호스피스 병동. 


발을 디디는 순간에도 생과 사가 들락거리는 곳은 깨끗하다 못해 투명하고 어딘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었습니다. 


식사 시간이 막 끝난 오후. “통증은 괜찮으시고요? 잘 걸어다니시네요”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서며 이대영 센터장이 환자들과 가벼운 대화를 이어갑니다. 


30대 초반의 여성 암 환자는 링겔 대를 밀며 지나가던 중 잠시 멈추어 미소를 지어주었습니다. 


“식사는 하셨어요? 뭐 드셨어요?” 이번에는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와 눈을 맞춥니다. “오랜만에 배달 음식 시켜서 맛있게 드셨다”고 병문안을 온 젊은 두 손자가 답을 대신해줍니다. 


죽음을 앞둔 말기 암 환자들이 머무는 호스피스 병동. 무겁고 어두울 것 같은 병동 한쪽에는 푸른 식물로 가득 찬 아늑한 휴식 공간과 넓은 유리창이 있었습니다. 


너른 창 사이로 따사로운 햇살이 비껴 들어왔고 죽음을 받아들인 환자들의 모습에서 역설적이게도 ‘삶’이 느껴졌습니다.


 


(호스피스 병동 한 편에 마련된 휴식 공간에서 사회복지사의 기타 연주와 함께 환자의 생일파티가 열리고 있다.)


호스피스라는 공간이 일반병동에 비해 아늑하게 조성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호스피스 의료팀은 의사와 간호사 뿐 아니라, 환자와 가족의 심리를 돌보는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의료팀은 환자의 신체적 고통 완화는 물론, 심리상담, 환자와 가족의 정서적 돌봄 역시 책임지게 됩니다. 


또한 원예치료, 작은 음악회, 생일잔치, 제철 음식 만들기, 편지 쓰기 등을 통해 의미 있는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됩니다. 


올여름에는 사연 있는 ‘작은 결혼식’이 병동 내에서 마련되기도 했습니다. 


한 남성 환자가 “두 달 뒤 있을 아들의 결혼식만큼은 꼭 보고 싶은 게 소원”이라고 밝힌 것. 


하지만 환자의 몸은 두 달을 버틸 수 없는 상태였고, 이에 의료팀은 작게나마 병동 내에서 결혼식을 마련했습니다. 


“비록 침상에서 누운 채 아들의 결혼사진을 찍었지만, 환하게 웃는 얼굴이 아직도 많이 기억에 남는다”는 이대영 센터장. 환자는 작은 결혼식 일주일 후 임종했습니다.




(병동 내에서 열린 작은 결혼식. 가족들은 80대 아버지와 함께 마지막 가족사진을 찍으며 카메라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보았다.)


호스피스 병동의 책임간호사 신선미 씨는 “분위기가 침울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지만 남은 생에 좋은 추억을 쌓기 위해 함께 웃으며 연을 쌓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 “호스피스는 어두울 것이란 편견을 깨기 위해 의료팀이 환자의 마지막 친구가 되어 준다는 생각으로 더욱 긍정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예수병원 의료진으로 구성된 연주팀이 연말을 맞아 환자와 보호자와 함께하는 ‘성탄축하 작은 음악회’를 마련했다. )


이별 여행의 종착지는 ‘죽음’이지만, 단 하루라도 더 고통 없이...


호스피스에서 만난 보호자 오 씨. 이달 초, 호스피스 병동에서 90대 어머니를 떠나보낸 오 씨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전해주었습니다. 


지난 추석부터 병세가 악화된 어머니는 결장암 4기 판정을 받았고 11월 말, 호스피스 병동으로 오게 됐습니다. 


이후 오 씨의 어머니에겐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어머니의 통증이 완화되니까 이전에는 못하던 걸 하실 수 있었어요. 정신이 맑아져서 자식들을 구분할 수 있었고요.” 


침상에 누워만 계시던 과거와 달리 ‘휠체어를 끌며 병원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드시고 싶다는 호박죽을 하나 사갖고 온다든가’하는 평범한 일상이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어머니가 가신다는 건 알고 있었죠. 알고 있지만 그 시간을 기다리며 통증 없이 갈 수 있다는 것이 만족스러운 거겠죠.”


어머니가 연세는 있으셔도 상당히 건강하던 분이라 갑작스러운 암 판정은 힘들었습니다. 이별하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호스피스에서 조금 더, 하루라도 더 일상을 살길 바라며 이별을 준비하는 것이죠. 


이곳에 오셔서 이전에는 안 잡수던 것들을 찾으시더라고요. 생선, 장어. 비린 거 절대 안 드셨거든요. 그런데 이런 음식을 찾아서 잡숴요. 그 자체가 너무 고맙고... 삶이란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에 도착한 시간들을 그저 곁에서 지켜봤습니다. 그런 시간들이었습니다”라며 호스피스에서 맞이한 어머니의 임종을 회상했습니다. 


그는 “호스피스에서 어머니와 함께한 마지막 순간이 너무나 고마운 시간이었다며 호스피스 제도가 환자와 가족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제도로 느꼈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죽음의 질’에 대해서도 생각할 때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환자의 신체적 증상뿐 아니라 정신적 상태까지 보듬는다. 호스피스에서 진행되는 음악치유 프로그램의 모습.)


4년 동안 암으로 힘겹게 투병하다 호스피스에 안착한 한 환자는 호스피스에 입원 후 열흘 뒤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 후 환자의 보호자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4년 동안 고생했던 모든 것들, 열흘로 보상받았습니다.” 


병세가 악화돼 2-3주 동안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했는데, 호스피스에 오니 이틀 만에 통증이 잡혔습니다. 그렇게 열흘 동안 온전한 정신으로 밥도 먹고, 편안히 누워 가족과 시간을 보내다 임종했습니다. 


‘호스피스는 죽으러 가는 곳 아니냐?’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의 인식입니다. 


이에 이대영 센터장은 “원하지 않는 질병으로 생의 마지막 시간을 신체적인 고통과 두려움으로 힘들게 보내는 분들이 많다”며 “호스피스는 생의 마지막 시간을 조금 더 편안한 상태에서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같은 ‘웰 다잉’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도 많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3가지 유형, 입원형, 가정형, 자문형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 중 병원에서 운영하는 ‘입원형’은 ‘암’ 환자에 국한돼 있습니다. 즉, 다른 질병으로 말기 상태에 이른 환자들은 혜택을 볼 수 없는 것. 


또, 수익적인 측면에서 일반 병실을 운영하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기 때문에, 후원단체 등의 지원 없이는 호스피스를 운영하기 힘든 실정.


국민건강보험공단 연구팀에 의하면 전국 상급병원 45개소 중 입원형 호스피스 완화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은 16곳에 불과합니다. 


이마저도 상당수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보니 지역적 불균형도 심합니다. 


이에 대해 이대영 센터장은 “현 제도로는 호스피스 돌봄을 제공하면 할수록 병원은 손해를 보는 현실”이라며 “국가적으로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지역사회에서도 이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구축돼, 말기질환으로 고통받는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존엄한 마지막을 지키는 데 도움을 얻길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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