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로 휴가 가는 비행시간보다 공항 리무진 타는 시간이 더 길다'
지방 주민들. 특히 인천공항과 멀리 사는 남부지역 주민들이 매번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소환하는 푸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볼 맨 소리는 '우리도 공항이 하나는 있어야지'라는 각성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전라북도도 예외는 아닌데, 특히 지지부진한 새만금 개발사업의 새로운 동력을 공항 신설에서 찾으려는 정치적 접근까지 맞물리면서 새만금 공항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정부의 제6차 공항개발 종합계획에는 새만금과 가덕도에 신공항, 제주 제2공항, 무안·광주공항 통합 이전, 흑산·백령·서산·울릉공항 추진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90년대 일본이 토건국가로 한창 버블(bubble) 경제를 키워 97개에 달하는 공항을 짓고 지역 경제 위기 돌파를 시도했던 개발방식과 흡사합니다.
[주요 공항 어떻게 운영되나?]
인천공항과 함께 아시아 최대 허브공항으로 꼽히는 곳으로는 홍콩 첵랍콕, 방콕 수완나품,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 등이 있습니다.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을 예로 들어 보죠.
전 세계 모든 주요 도시와의 직항로를 가지고 있고, 아시아 주요 도시와의 연결편 등이 가동되면서 코로나19 이전에는 하루 이착륙 편수가 천 편에 달했습니다.
그렇다면 활주로는 몇 개나 될까요?
주변 지인들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면 대다수는 5개나 10개, 20개 등 공항 규모에 걸맞는 답변이 유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 공항의 활주는 단 두 개씩 뿐입니다.
위에 열거된 대부분의 공항들이 모두 이착륙 각각 1개의 활주로를 가지고, 현실 관제를 하는 공항입니다.
인천 국제공항 또한 지난 2018년 제2여객터미널이 준공되기 전까지 2개의 활주로만 운영되고 있었고, 이후 한 개가 늘었을 뿐입니다.
결국 관제시설, 청사, 세관, 검역 등 공항 전반이 원활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활주로 하나 짜리 소규모 공항이라도 정상적으로는 하루 수 백 편의 비행기 이착륙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인도 뭄바이 공항은 2016년 기준 연간 약 30만 편 운항해 1개 활주로에서 시간당 약 35편 항공기가 이착륙했습니다.
[비행기는 어떻게 뜨고 내리나?]
여객기의 가격은 가히 천문학적입니다.
한때 5백여 명 탑승이 가능할 정도로 초대형 기체를 자랑했던 에어버스社 A380의 경우 구입가격이 5천억 원에 달했습니다.
중거리 위주로 운행하는 보잉社의 737 맥스도 천 5백억 원에 달할 만큼 항공사 입장에서는 쉽게 한 두대 더 살 수 있는 가격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행기는 손님이 타고 내리는 시간 이외에는 무조건 하늘에 떠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문제는 모두가 자는 새벽 시간대입니다.
이 때문에 국내 항공사들은 늦은 밤 외국에서 승객을 싣고 밤 새 하늘을 날다가 이른 아침 국내 공항에 착륙하는 시스템으로 여객기를 운영합니다.
그리고 비행기를 청소하고 승객을 태우고 단거리 위주로 운항하다가 다시 저녁 무렵 외국 공항으로 출국자들을 태우고 가는 패턴입니다.
공항 신설을 고대하는 주민들은 주로 아침과 저녁, 제주도나 인천공항을 연결하는 편리한 운항시간을 기대하겠지만, 절대 여의치 않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또는 아예 인천 공항에 갈 필요도 없이, 신설되는 공항에서 마음 놓고 태국 푸껫과 싱가포르를 직항으로 가서 휴가를 즐기는 상상도 있을 수 있지만, 국제선 정기편을 운영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비행거리 5시간 이상의 항로에는 중형급 이상의 비행기가 투입돼야 하는데, 최소 2백 명의 승객이 매 편마다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개항한 지 오래된 청주와 무안 국제공항도 국제선의 경우 사실상 국내선과 다름없는 일본과 중국 산둥반도 등 몇 개 지역을 제외하고 정기편이 없었습니다.
가끔 베트남 다낭을 가거나 앙코르 와트로 유명한 캄보디아 씨엠립을 가는 비행기는 모두 8차례 안팎의 전세기가 전부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90년대 백 개 가까운 공항을 신설한 일본은 어떻게 됐을까요?
인구도 우리보다 2배나 많고 특히 7천 개의 섬으로 이뤄진 지리적 특성도 있지만, 국제선의 부재와 이용객들의 수요에 맞춰지지 않는 운항 스케줄 때문에 부진에 부진을 거듭했습니다.
결국 지방정부 재정 위기의 주요 요인으로까지 거론되고 있죠.
잼버리 대회 방문객들은 비행기를 타고 새만금에 오면 더할 나위 없이 편합니다.
그리고 여름휴가철에 새만금에서 사이판도 가고, 보라카이도 가면 휴가의 만족도는 훨씬 높아질 것입니다.
골퍼들 역시 무거운 골프백을 질질 끌지 않고 품격 있게 새만금-파타야 노선을 이용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역시 공항이 있으니 정말 좋아"라는 반짝 만족감 이외의, 그 나머지 시간에 신공항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도 누군가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