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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공무원이 할 일 안 했지만.. '직무 유기는 아니다?'
2022-05-12 4259
조수영기자
  jaws0@naver.com

“명백한 불법인데도 공무원이 일을 안 합니다. 직무유기 아닌가요? 꼭 좀 취재해주세요.”


언론사엔 이렇듯 공무원을 타박하는 제보전화가 걸려올 때가 많습니다. 진심은 느껴지지만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잦아 기사화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마치 흙속의 진주처럼 공익적 가치를 발견하곤 하지만, 대개는 언론의 힘을 빌려 민원을 해결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깔려있습니다. 물론 그걸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렇지 싶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선 공무원들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비롯된 문제가 종종 발생하곤 합니다.



■ 강제추행 학폭 알고도 신고 안 한 '학교 관계자들'


3년 전, 전북 정읍시의 한 중학교 담임교사와 간부교사, 학교장 등 3명이 재판에 넘겨진 일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이름하여 직무유기. 도대체 무슨 일을 그렇게 안 했기에 법정에까지 서야했던 것일까요?


시간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학교 담임교사는 신학기 상담을 하던 중 제자로부터 학교 폭력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해당 학생이 같은 학교 학생 3명으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고 나체 사진까지 찍혔다는 피해 제보였습니다. 교사는 이 내용을 학교폭력 담당 교사와 교장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습니다. 교장은 가해학생들을 징계하는 게 '선도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구두 사과를 받는 수준에서 사건을 종결해버린 것이죠.


학교 측은 분명 ‘할 일’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보호법 제34조는 아동 청소년의 성범죄 사실을 인지한 교육기관 종사자의 신고 의무를 규정합니다. 학교 측은 신고 의무를 저버린 사실이 전북교육청 감사로 적발된 뒤에야 경찰에 늑장 신고했습니다. 결국 수사기관 조사까지 받게 되는데요. 검찰은 지난 2019년 ‘신고할 일’을 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피해 학생의 담임교사 등 3명을 직무유기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 일 제대로 안 했어도 직무유기는 아니다?


명백히 할 일을 하지 않았던 학교 관계자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줄줄이 '무죄'를 선고한 것이죠. 당시 재판부는 내부 상담으로 사건을 마무리 한 건 “미흡하고 잘못됐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직무유기는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고발을 안 했을 뿐이지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ⅰ)피해 사실 확인 ⅱ) 상담 조치 ⅲ) 사과를 받아냄



공무원들이 직무유기 혐의를 벗은 사례는 최근 전북 완주군에서 또 나왔습니다. 지난 2019년, 고약한 악취를 내뿜던 폐석산이 지역사회 이목을 집중시켰던 일이 있었습니다.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지만 쓰레기는 없었던 그곳. 나중에 알고 봤더니 하수찌꺼기를 딱딱하게 재가공한 인공흙(고화토)을 무단으로 매립한 불법 현장이었습니다. 채석을 끝낸 뒤 남은 거대한 구멍을 인공흙으로 채웠던 것이었죠.




■ 불법매립 알고도 방치한 공무원들


조사결과 불법 매립된 인공흙은 무려 50만 톤, 50톤 덤프트럭을 1만 번 실어날아야 하는 규모였습니다. 2014년부터 3년 동안 이뤄진 불법 매립으로 폐석산은 3년여 만에 악취를 내뿜는 거대한 골칫덩이로 전락했습니다.


업체의 불법도 불법이지만, 이곳이 당국의 관리·감독이 이뤄진 현장이었다는 게 논란을 더 키웠습니다. 3년 전, 저희 전주MBC의 취재 역시 완주군청의 허술한 관리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이후 감사원은 이 사안에 대해 공익감사에 나섰고 비위를 적발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결론은 ‘공무원들이 불법을 알고도 방치했다’는 것, 결국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었습니다.


완주군청 폐기물 담당 공무원 A씨. 지난 2014년 악취 민원을 접수하고 현장 방문까지 해 인공흙 불법매립을 확인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환경부에는 질의 공문까지 보냈습니다. 불법성 여부를 한 번 더 확인하려는 꼼꼼함이 엿보였습니다. 불법을 확인하고 매립장을 불법 운영한 업체 측에 과징금 2천만 원을 부과하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진 납득할 수 있는 대응입니다.


이상한 건 완주군청의 후속 조치였습니다. 문제의 인공흙이 꾸준히 불법 매립되는데도 반입을 막지 않은 겁니다. 도리어 반입을 허용하는 문서를 생산했고, 완주군수의 결재까지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사실상 폐기물 불법반입을 방조한 것도 모자라, 어처구니없게도 불법을 허가해준 셈이었습니다.


매립장 운영 업체가 저지른 불법 위에 당국이 무심결에 찍어준 결재도장은 고스란히 환경참사로 되돌아왔습니다. 주변 마을로 피해가 번지진 않았다지만, 폐석산 인근 저수지는 완전히 오염됐고, 비소와 페놀 같은 발암물질 중금속까지 검출됐습니다.(불법매립과 발암물질 검출 사이의 인과관계는 규명이 필요합니다.)


완주군은 폐석산으로 빗물 유입을 막고, 지하수 오염 등을 막기 위해 대책 마련에 착수했습니다. 그렇게 지난 3년 동안 170억 원을 썼습니다. 문제는 쓸 돈이 더 있다는 겁니다.




■ 3년에 170억, 앞으로 1,000억.. "공무원은 놀지 않았다"


이 환경참사를 빚은 담당자들은 그럼 어떻게 됐을까요? 검찰은 지난해 관련 공무원 3명을 법정에 세웠습니다. (결재라인에 윗선이 더 있었지만 공소시효 등 사유로 제외) 적용한 혐의는 역시 직무유기. 그럼 결론은 어땠을까요? 앞서 소개한 학교 관계자들처럼, 모두 '무죄'였습니다.


아직 1심 선고 결과지만, 재판부는 ‘당시 완주군청 공무원들이 일을 하긴 했다’는 논리를 받아들였습니다. ⅰ)공무원들이 문제 현장을 방문해 점검했고 ⅱ) 정기적으로 보고를 주고받는 등 ‘일을 했다’고 봤습니다. 판사는 ‘담당 직무를 의식적으로 방임하거나 포기해야 직무유기가 성립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을 이 재판에 참고했습니다.


일을 허술하게 처리했더라도 그것 역시 직무를 수행한 것이니 직무유기까진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사실상 공무원들의 소극행정에 면죄부를 준 결과였습니다.


현재 완주군청은 피해지역 주민 등이 참여하는 공론화위원회를 꾸려 신규 매립장 건설을 위한 논의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폐석산에 불법 매립된 인공흙 약 50만 톤을 옮기기 위해 폐기물매립장을 새로 짓는다니 이걸 달가워할 지역주민이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당장 비용부터가 고민입니다. 허술한 행정에서 비롯된 요금 청구서는 도무지 그 끝을 알기 어렵습니다. 매립장 이전을 위한 공론화위원회가 용역조사를 맡겨 앞으로 들어갈 총예산을 따져봤더니 들어갈 예산이 자그마치 1,000억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완주군 1년 살림 가운데 8분의 1을 탕진해야 하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 책임자는 도대체 누구인 것일까요? 분명한 점은 그 결과가 어찌됐든 공무원들은 일을 했고, 놀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조수영 기자 jaws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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